|  로그인 | 회원가입 |  구독신청 | 광고문의 | 기사제보 

choo_fan

어느 소녀의 기도
DATE 11-06-23 16:50
글쓴이 : 성향스님      
90년대 중반 저는 서울의 조그만 사찰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는데요, 마침 저는 100일 기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 기도를 하러 법당에 들어가면 단정히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항상 미리 법당에 와 절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기도기간 중엔 묵언을 하기에 기도를 마친 저는 바로 방으로 가곤 했죠. 그렇게 그 소녀와 저는 침묵 속에서 백일 기도를 함께 하게 되었고, 기도 기간이 거의 끝날 때가 되었을 쯤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소녀가 무슨 기도를 그렇게 간절히 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학생이세요? 무슨 기도를 하시나요?”
제 물음에 그 소녀의 두 눈엔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전 그동안 참회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전 그 소녀의 울음에 크게 당황을 했고, 또한 참회기도를 한다니 그 사연을 궁금해 물었습니다.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연인즉 그 소녀는 당시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과외를 받던 대학생 가정교사가 그 소녀에게 실수를 하게 되었고 소녀는 그 충격으로 인해 자신은 더러워진 사람이 되었다고 자책하게 되어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집안이 독실한 불교집안이라,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바른 몸가짐과 행실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살아왔는데 이런 사건을 겪고 나서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가까운 사찰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한 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참회기도를 하고 이제 100일 참회 기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비장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 도대체 어떤 말로 위로해 주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소녀가 겪은 사건을 연꽃에 비유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불교에서의 상징적인 꽃은 연꽃을 이야기하지, 그 의미를 알고 있니? 여러 의미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우리 마음을 상징하는 거야. 연꽃이 피는 곳을 살펴보면 보통 진흙 속에 피는데, 그 연꽃에 아무리 더러운 것이 쏟아져도 절대 물들지 않아. 그렇듯이 너의 마음 또한 항상 그렇게 물들지 않는단다. 그렇듯이 넌 더러워 진 게 아니고 너의 마음은 항상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깨끗하단다. 앞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이가 다 그러하단다. 마음의 원한을 잘 풀고 모든 걸 용서해 주렴.”
그렇습니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그것이 자의였던, 타의였던 간에 일어났던 과거일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모든 삼라만상 인간사는 물처럼 흐르는 것이니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좋은 일이었다 하더라도 모두 떨쳐 버리고 현재의 순간에만 충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좋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에 대한 집착은 미래로 가는 걸음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죄책감에 힘들고 괴로운 적이 있었나요?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 괴로움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에너지로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 전환의 노력이 예상치 못한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으니까요.
몇 일전 성인이 된 그 소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올 가을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하네요. 부디 좋은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텍사스 불자 12-05-12 22:30
답변 삭제  
참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_()_
    

[연재] 가장 많이 읽은 기사
tail2_banner01
tail2_banner02
tail2_banner03
tail2_banner04
 
  • 회사소개
  • |
  • 공지사항
  • |
  • 제휴문의
  • |
  • 구독문의
  • |
  • 광고문의
  • |
  • 고객문의

  •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by Weekly New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