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생활 잘하던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이 구원 받았을까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떤 목사님이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설교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정말일까?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이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런 주장이나 생각은 회심과 회개를 혼동하는데서 온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가 잘못한 죄에 대해 회개(repent)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성령을 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원래의 뜻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보혈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회개하라는 단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이다. 이 단어는 회개(repent)의 의미가 아니라, 회심(conversion)의 의미로 사용된다.
회심과 회개는 다르다. 회심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 안 믿던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반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회개는 우리가 잘못한 구체적인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심하는 순간에 과거에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짓게 될 모든 죄까지 다 용서해주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김을 받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회심은 구원과 관계있다. 회심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죄 사함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회개는 구원보다는 성화와 관계가 있다.
회심한 사람은 끊임없이 회개하며 산다. 회심한 사람은 죄를 안다. 죄를 인식하게 된다. 죄를 깨닫게 된다. 죄를 두려워하게 된다. 죄와 싸운다. 죄를 지으면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한다.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죄의 심각성을 모른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 가운데 살아간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 회심한 사람만이 회개를 할 수 있다.
회심하고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끊임없이 평생 동안 회개를 통해 성화되어져 가야 한다.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짓고 입술로만 회개하고 그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개하고도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고 하면 그 회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뿐인 회개가 무슨 회개이겠는가?
회개를 했으면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기고 성화되어가는 삶을 살아야, 그 회개가 참된 회개인 것이다.
짝퉁 회개에는 눈물이 없다. 짝퉁 회개에는 애통하는 것이 없다. 짝퉁 회개에는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찌할꼬…’ 통곡하는 것이 없다. 짝퉁 회개에는 엎드리는 것이 없다. 무릎 꿇는 것이 없다. 짝퉁 회개에는 금식이 없다. 짝퉁 회개에는 열매가 없다.
회개처럼 보이지만 회개가 아니다. 통렬한 회개가 없으니까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이 지금 도가니라고 하는 영화 때문에 전 국민이 지금 분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광주의 청각장애자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거기에 장로가 나온다. 그 장로는 그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신실한 장로로 그려지고 있다. 그 영화에는 십자가가 여기저기서 계속 나온다. 계속 예배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배경 속에서 전개되어지는 이야기는 전 국민의 분노를 살만큼 사악한 일들이라고 한다.
그 영화는 기독교인들의 위선과 거짓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회심은 했는데 회개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렬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 사함은 받았는데 성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심은 했는데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고 전도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 아닌가?
오늘날은 죄 사함 받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죄짓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다.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라면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성화되어가야만 한다. 그런 삶을 통해서 땅에 떨어진 교회의 위신이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더렵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