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목욕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고 그녀가 “심히 예쁘게” 보여 궁으로 불러들였다.
다윗은 왕으로서 우리야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날 따라 그녀가 “심히 예쁘게” 보였다. 갑자기 알고 있던 여자가 “심히 예쁘게” 보일 때 조심해야 한다.
다윗은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동침하게 된다. 마침(?)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불륜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밧세바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임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밧세바가 막 월경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밧세바를 취했던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고, 그러면 그가 한 일이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될 텐데, 다윗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다. 왕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아내를 취할 수는 없었다.
우리야가 죽자 다윗은 그녀를 합법적으로 아내로 맞아들였다. 밧세바는 이제 정식으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가 낳은 첫 아들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죽고 만다. 다윗은 혹시라도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 아이를 살려주실까 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아이를 끝내 데리고 가시고 말았다.
다윗은 죄는 용서받았지만 죄의 대가는 치러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기 때문에 이름도 져주지 못했다.
마태는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제시하면서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밝히고 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우리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어간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이 구절을 읽는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다윗이 마태를 ‘명예 훼손죄’로 고발할 수도 있는 그런 문제이다. 다시 한 번 이 구절을 읽어보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이 아니다. 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그리고 그 뒤에 태어난 아들이 솔로몬이다. 죽은 아이는 불륜의 씨앗이었지만, 솔로몬은 그렇지 않다.
우리야가 죽은 다음 다윗은 밧세바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마치 다윗이 남의 아내를 통해(불륜을 통해) 솔로몬을 낳은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정식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는데,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낳았다니, 자기 아내가 된 사람에게 ‘우리야의 아내’라니, 다윗에게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도 그리 떳떳하지는 못하다.
우리야가 죽은 다음 밧세바와 결혼함으로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만들긴 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불법적인 방법(살인)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태가 기록한 족보에 대해서 다윗은 할 말이 많고 억울한 것도 있겠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도 다윗이 남의 아내에게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솔로몬을 낳았다고 믿을 것이다.
마태가 너무 한 것 같기도 하고, 다윗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다.
다윗은 자기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죄가 이렇게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낱낱이 공개되어 영원무궁토록 망신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죄가 이런 것이다. 단 한 순간의 잘못으로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죄는 단 한 순간에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죄가 이렇게 무서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