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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종은, 종이 아니라 ‘노예’이다!
DATE 12-04-13 09:00
글쓴이 : 이진희      
노예들이 팔려가는 섬이 있다. 그 섬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평생 그 섬에서 노예처럼 죽어라고 일하다가 죽는 것이다.
그 섬에 노예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것을 알게 된 두 청년(모라비안 교도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 생각하고 그 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섬에는 노예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팔아넘겼다. 노예들을 구하기 위해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한 번 노예가 되면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 섬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지 못하는데, 평생 일만 하다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데, 그들은 기꺼이 노예가 된 것이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7).
예수님이 종이 되셨다고 했는데, 여기 종은 우리가 아는 그런 종이나 하인 (servant)가 아니고 원어에 보면 둘로스(doulos)로서 노예이다.
예수님이 종의 형태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이사야 53장을 읽노라면 마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누군가가 중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예언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 700년 전에 기록된 예언이다. 거기에 나오는 ‘그’를 ‘예수’로 넣어 읽어보라.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이사야 53장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 52장에서도 그 메시야를 종이라고 칭하고 있다.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여기에서 종은 히브리 성경에는 에베드(ebed), 헬라어 성경에는 둘로스로 나온다. 종이 아니라 노예를 뜻한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실 메시야는 고난받는 노예라는 것이다. 노예처럼 멸시 천대 십자가를 질 것이라는 것이다. 노예처럼 채찍에 맞을 것이라는 것이다. 노예처럼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침 뱉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데,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노예이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변명도 하지 않고 항거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런 수난을 다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종은 모두 노예를 일컫는다. 종과 노예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다 노예를 종으로 번역해놓았다. 아주 잘못된 번역이다. 종과 노예는 천양지차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그러면 거부 반응을 보인다. 불쾌하게 생각한다.
노예하면 쇠사슬에 매여 있는, 노예선에 끌려가는 그런 노예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라는 단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종으로 살짝 바꿔놓은 것이다.
우리는 종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원어 그대로 하나님이 노예가 되셨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누구나 그 말에는 “아멘”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노예다”라고 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노예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노예가 어떤 존재인가? 노예는 주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100% 복종한다. 노예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산다. 노예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노예의 생명은 100% 주인에게 달려있다. 노예의 운명은 100% 주인에게 달려있다. 노예는 주인에게 100% 속해 있다. 노예는 100% 주인에게 의존한다. 노예는 절대로 주인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노예는 성공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노예는 하루 하루 주인의 은혜로 산다. 노예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노예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 바친다. 죽기까지 순종한다. 노예는 주인을 위해서 존재한다. 주인의 기쁨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주인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하나님을 “주님”(Lord)으로 섬기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구하시기 위해 거기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노예가 되어 이 땅에 오셨다.
모라비안 청년들처럼 노예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노예 취급을 받으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탄의 노예, 죄의 노예, 죽음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셨기 때문에 그 청년들도 노예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분의 행복한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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