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구독신청 | 광고문의 | 기사제보 

choo_fan

엘리사는 왜 나아만 장군이 찾아왔을 때 나와보지도 않았는가?
이진희 목사의 그래서 그랬던거야?
DATE 12-07-20 10:05
글쓴이 : 이진희      
시리아의 사성장군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갔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그를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영접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내게로 와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 5:11).
그러나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시종을 내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왕하 5:10)"
이에 나아만은 대노하게 된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왕하 5:12).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그는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만류로 참는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왕하 5:13)"
나아만은 할 수 없이 분을 삭이고 엘리사가 시킨 대로 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그런 다음에야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나타난다. 나아만이 그에게 엎드려 감사를 표하고 떠난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사성장군이었다. 왕의 친서까지 들고 이스라엘을 찾아왔다. 국사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왜 엘리사는 나아만이 찾아왔을 때 그를 영접하지 않았는가? 왜 나가보지도 않았는가?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는가?
당신이 사성장군이면 사성장군이지 내가 당신을 두려워할 줄 아느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인 내가 당신에게 굽실댈지 아느냐? 당신이 아쉬워서 나를 찾아온 것이지 나는 당신에게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다. 사성장군이라고 해서 내가 당신을 특별 대우할 줄로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오산이다. 나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특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 나에게 특별 대우 받을 생각하지 말라. 그래서 나아만을 영접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왕하 5:9) 위풍당당하게 그를 찾아온 나아만이 눈꼴 사나와서 그를 영접하지 않은 것인가? 당신이 진정 고침을 받고 싶다면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고쳐주지 않을 것이다. 나아만이 겸손하게 그에게 나아와 무릎 꿇고 사정을 하기를 바라서 엘리사가 그를 영접하지 않은 것인가?
만일 나아만이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냥 돌아갔더라면, 그는 돌아가자마자 10만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엘리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 되고 만다. 엘리사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괜한 자존심을 부렸던 것일까?
아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을 만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위에서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인용했다. 거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밑줄 친 단어에 주목하라. “깨끗하다.” “깨끗하게 되다.”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다. 그래서 “깨끗하게” 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다. 엘리사는 “깨끗하게” 되려면 요단강에 7번 들어가라고 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고 해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돌아가려고 한다. 이에 신하들이 말리면서 “깨끗하게” 될 수만 있다면 7번이 아니라 700번이라도 요단강에 들어가셔야 마땅하다고 설득을 한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깨끗하게” 되었다.
“깨끗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taher이다. 이 단어는 실제적인 정결함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정결함과 제의적인 정결함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레위기의 정결법에 나오는 핵심적인 단어는 “정결”이다. 바로 이 단어가 taher이다.
레위기에 따르면 대표적인 부정이 나병이다. 나아만은 제의적으로 부정케 된 사람이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다. 접촉하게 되면 그 사람의 부정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는 나병에서 완전히 낫기 전까지는 누구도 접촉할 수 없다.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병이 완전히 난 다음 제사장에게 확인을 받아야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아만은 바로 이런 나병에 걸렸던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엘리사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교만해서가 아니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정결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를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일반 사람이 아니고 예언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결법을 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깨끗하게” 된 후에 그를 만난다. 왜냐하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에 “깨끗하다”는 단어가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는데,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정결법”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컨텍스트에서 엘리사의 행동도 이해되어야 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연재] 가장 많이 읽은 기사
tail2_banner01
tail2_banner02
tail2_banner03
tail2_banner04
 
  • 회사소개
  • |
  • 공지사항
  • |
  • 제휴문의
  • |
  • 구독문의
  • |
  • 광고문의
  • |
  • 고객문의

  •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by Weekly New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