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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풋사랑이 울고 있다
DATE 12-05-04 08:53
글쓴이 : 김건하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얫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오월의 풋사랑이 울고 있다
 
계절 중의 계절 오월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에 미풍은 살랑거리고 한껏 푸르름을 안은 신록이 생명의 에너지를 마구마구 뿜어대는 계절이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도 이 오월에 있지만, 군사혁명과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역사의 아픈 상처로 얼룩진 달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저항시 민중시를 소개하기에 알맞은 달이지만, 숙고 끝에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이야기 시를 소개하기로 하였다. 어둡고 아픈 과거를 되짚기에는 계절이 너무 곱고 눈부시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오월쯤에 이런 사연 하나씩은 있음 직하다. 나도 사춘기 무렵, 그 시절을 알싸하게 일깨우는 풋사랑 하나가 있다. 그래서인지 송찬호님의 ‘찔레꽃’은 읽을 때마다 내 가슴에 흰빛 그리움의 꽃으로 돋아난다.
까까머리의 소년은 그 해 오월의 막바지, 먼 친척의 집에서 벌어진 혼례 잔치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차역을 향해 좁다란 논둑길을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한 소녀 아이가 나풀나풀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하늘 꽃잎 같은 그 아이를 보자마자 먼발치서부터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소녀는 폭죽처럼 터지는 봄의 정취에 정신이 팔렸던 것일까.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고 그저 봄나비 처럼 팔랑팔랑 춤을 추듯 다가왔다.
아, 그런데 소녀의 머리 위에 해사한 한 무더기 찔레꽃! 그 만만찮은 가시를 어떡하고 저리 화관을 만들었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난 소녀의 눈부심에 눈이라도 멀어버린 듯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픈 듯 안타깝고 서툴지만 간절한 그러나 행복한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녀석이 머뭇대며 어렵게 부탁을 해왔다. 어떤 여학생을 사모하는데 내게 편지를 좀 써 달라는 것이었다. 벅찬 짝사랑의 심정을 쏟을 데가 없던 차에 흔쾌히 그러마 했다.
난 마치 짝사랑의 그 소녀라도 되는 양 절절한 내 심경을 송두리째 담아 대필 연애에 열을 올렸다.
밤새우며 편지를 쓰는 그 행복감이라니!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가 그 여학생을 같이 만나러 가자 했다. 절친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어색할 것만 같아 망설이다 친구는 어떻게 데이트를 할까 싶어 따라나섰다.
잘 배워뒀다 나도 실전에 써먹을 양이었다. 아! 그런데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친구가 좋아한다는 그 여학생은 내가 한시도 잊지 못하던 바로 그 소녀였던 것이다.
아, 내 가슴에서 높은 산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커다란 댐 하나가 붕괴되던 그때의 그 심정. 그러나 ‘그 편지를 쓴 사람은 바로 나다. 그 편지는 너를 향한 나의 간절한 마음이다’ 이따위 고백을 하기엔 난 너무 어리숙하고 쑥맥이었다.
그저 찔레꽃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듯 싸나이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훔칠 수밖에! 친구에게도 소녀에게도 끝내 아무 말 못 하고 앓았던 그 긴긴 상사병.
그 이듬해 찔레꽃이 다시 살풋살풋 그 향을 마른 가슴에 찔러넣을 무렵에야 간신히 그 아픈 찔레꽃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시인이 반드시 자신의 경험으로만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시 ‘찔레꽃’도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슬프도록 하얀 찔레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오월 같은 풋풋한 사랑 그리고 시린 이별 한 자락이 묻어나올 것만 같지 않은가.
누구나의 가슴속에 한 그루쯤 살아 꽃필 찔레나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그 풋사랑은 비록 그 꽃이 수수해도 저리도록 짙은 추억의 향을 남긴다. 
위대한 시인일수록 그의 눈은 매처럼 밝히 보며 여지없이 그 속성을 낚아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렇듯 꿈틀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던져놓는다. 그래서 이 시는 시로 쓴 한 편의 소설이며 우리는 이런 류의 시를 이야기 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 어릴 때 어머닌 깨진 사발이나 이 빠진 사기그릇들을 꼭 찔레나무 덤불 아래 버리셨다.
왜 그러셨는지 어떤 속설에 의해 그러셨는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사랑의 순정함과 이별의 아픔. 그 매개가 하필이면 하얀 찔레꽃 덤불아래 마치 타임캡슐이라도 되는양 엎어놓은 하얀 사발 속의 편지라니! 그 시대의 사랑법은 이 시대의 디지털화한 연인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운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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