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구독신청 | 광고문의 | 기사제보 

choo_fan

아름다운 이별
DATE 12-07-02 10:43
글쓴이 : 김건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아름다운 이별'
칠월이 코앞에 다가섰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젊음이 출렁대고 뜨거운 태양처럼 사랑이 이글거리는 계절이다. 한편 울 밑에선 봉숭아가 붉고도 애잔한 아름다움을 토하고, 청포도가 전설처럼 주저리주저리 열려 왠지 은쟁반에 하얀 모시 수건을 준비해야 할 것만 같은 여름이다.
시 속에 담겨 있는 이러한 토속적 풍경들의 실상은 일제에 항거하는 선열들의 꿋꿋한 항일정신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어쨌든 작열하는 젊음의 계절에 생의 가을쯤을 서성이며, 삶의 은근한 관조가 묻어나는 시를 골랐다. 그건 순전히 기억의 연못 가득 한여름 아침을 일깨우는 연꽃의 일렁임이 이 무더운 텍사스까지 밀려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슴을 고국으로 열고 있는 자는 알리라. 바람에 실려오는 계절의 풍경과 그 짙은 향수를.
같은 사랑이라도 중년 이후의 사랑과 젊었던 시절의 사랑은 사뭇 다르다. 자 여기 매우 대비되는 시 하나를 소개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중략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 중략 / 사랑하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중략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찾아가는 것이 젊음의 사랑법이다. 그들은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인생의 풍상을 겪을 만큼 겪은 중년 이후의 사랑은 넌지시 바라만 봐도 견딜만하다. 비록 뜨뜻미지근하나 그 강도는 젊음을 능가한다.
이별이게, / 그러나 / 아주 영 이별은 말고 / 어디 내생에서라도 /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 연꽃 / 만나러 가는 / 바람 아니라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언뜻 보면 이별의 노래다. 아니 더 넓게 보면 생의 끝자락에서 지난 생을 돌아보는 달관의 언변이다. 하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젊음이 쉬 이해하기 어렵다.
6.25 전쟁 중에 헤어진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가족들의 주린 배를 채울 먹거리를 구하러 간 사이 안타깝게도 폭격이 시작되었다.
생사를 가르는 와중에 아내와 아이들이 피난행렬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아내는 전쟁이 끝난 후 아이들과 고향으로 돌아와 남편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종내 무소식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남편을 수소문하였지만 끝내 남편의 행방을 찾지 못하였다.
아내는 결국 그 폭격에서 남편이 사망한 것으로 믿게 되었고 헤어진 그날을 남편의 제삿날로 정하였다.
행상의 지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수절하며 아이들을 잘 키웠다. 지극정성 제사를 지내며 다음 생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내로 남편을 만날 다짐하며 그리움을 다독거렸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자 대처로 떠나왔다. 아이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이었다.
혼신을 다한 대가로 변두리 시장에 자리 하나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고 그 곱던 얼굴에는 풍상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버스를 기다리다 몹시 낯익은 초로의 노신사 한 사람을 보았다.
순간 그녀의 심장은 마구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비록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고 머리에는 무서리가 내려앉았으나 오매불망 그리던 그녀의 안광은 그 모습을 놓칠 수 없었다. 이마의 작은 흉터까지 어김없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여, 여보!”
하지만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늙고 수수하긴 해도 몹시 고운 여인이 남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자 여인은 가만히 그의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뇌리에는 순간 자신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훑고 지나갔다. 서럽고 힘든 세월이 남편을 애타게 불러 세웠지만, 또 다른 눈물이 그 여인을 적시며 다가서는 그녀를 가로막았다.
두 마음이 1초에도 수만 번씩 왔다 갔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그 여인이 버스에 올라 어둠 속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보며 울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별이게, / 그러나 / 아주 영 이별은 말고 / 어디 내생에서라도 /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그녀의 사랑과 이별법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아린 그 무엇이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사랑이라지만 그만한 희생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연재] 가장 많이 읽은 기사
tail2_banner01
tail2_banner02
tail2_banner03
tail2_banner04
 
  • 회사소개
  • |
  • 공지사항
  • |
  • 제휴문의
  • |
  • 구독문의
  • |
  • 광고문의
  • |
  • 고객문의

  •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by Weekly New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