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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_fan

끝말 잇기
DATE 12-07-06 08:56
글쓴이 : 윤소영      
슬초빠와 슬초맘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South Dallas 지역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슬초빠가 교회와 한인 타운이 가까운 북쪽으로 집을 구해 이사를 하고, 슬초네도 그간 세를 주었던 집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어스틴 외곽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그간 편도 세 시간이던 운전 시간이 이젠 에누리없이 네 시간으로 늘게 된 것이다.
슬초맘 입장에서야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별 차이가 없는데, 문제는 꼼짝없이 같이 차를 타야 하는 에너자이저 슬초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펄펄 뛰어다녀도 부족할 열 살, 안전 벨트 메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세 시간도 괴로와 몸을 배배 꼬았었는데, 차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네 시간이 된다는 소식에 그녀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책을 읽자니 멀미가 나고, 호떡이와 두부는 슬초 무릎에 늘어져 잠만 자고, 엄마는 앞만 보고 운전해야 하고. 그러나 상황에 굴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놀아야 하는 슬초. 결국, 그녀는 장거리 여행 중 운전 중인 엄마와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른다.
첫 번째 게임은 길에 보이는 간판에서 영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 찾기. A에서부터 시작해 Z까지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누가 먼저 찾는 게임인데, 가령 B를 찾을 차례라면 Burger King 간판을 먼저 발견해서 읽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시간 보내기는 나름 좋은 게임인 것 같은데, 문제는 이 게임도 몇 번 하다 보니 단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일단, 텍사스의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간판 하나 안 보이는 황무지를 지나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 그것. 시골을 지나가자면 보이는 것은 Shell, Exxon, Subway 혹은 McDonald뿐. 게다가 해가 저물고 나면 이 게임도 파장이라는 치명적인 태생적 단점까지.
그래서 다시 고민해 보던 슬초가 찾아낸 게임은 바로 ‘Bilingual’ 끝말잇기 게임. 오리지널 끝말잇기를 해 보면 슬초의 짧은 한국어 어휘 덕에 2~3분 이상을 할 수가 없기에, 나름 머리를 굴려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영어의 경우는 묵음 ‘e’를 제외한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는 것이 규칙인데, 시험 삼아 한번 해 보았더니 나름 재미있다! 그리고 게임을 하며 나오는 단어 중 모르는 단어가 있는 경우는 그때 그때 의미를 알려 주고, 또 단어들을 기록하도록 해서 맞춤법이 틀린 단어들은 고쳐주고 알려주니 나름 학습 효과도 만점이다! 게임이 영어로 바뀌었을 때에는 반대로 슬초가 엄마에게 알려주는 단어들도 많이 생기는 것이, 슬초뿐만 아니라 슬초맘에게도 유익한 게임이 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어스틴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슬초와 이 Bilingual 끝말잇기 게임을 시작했는데 결국 어스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언뜻 들으면 지루할 것 같지만, 주로 엄마와의 생활에서 배운 한국어가 전부인 녀석이라 순간순간 받아치는 단어들이 너무 웃겨서, 운전 중 슬초맘이 빵 터져 차가 휘청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타조” -> “조옥발(족발)”, “발자국” -> “국물”, “보라” -> “라면”, “티아라” -> “라볶이”, “사장” -> “장조림”, “기차” -> “차뫼(참외)”... 한국어에서 영어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때도 요절복통이다. ‘착오’라는 단어가 나오자 “오”로 시작하는 한국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슬초, 고민을 좀 하더니 “O..asis”가 나온다. 자, 이때부터 게임은 영어 끝말잇기 게임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다.
집에 와서 잠들기 전 단어를 적어놓은 노트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기적귀(기저귀)” “괴걸이(귀걸이)” “자정거(자전거)”... 그간 나는 아이가 다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어로 다다다다 퍼부을 때가 많았는데, 이런 어휘 수준을 가진 아이가 그 빠른 엄마의 말 중 과연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또 그러니 그간 엄마와의 대화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슬초는 슬초대로 영어 단어들 앞에서 막히고 또 버벅대는 엄마를 보며, 슬초에겐 슈퍼우먼으로만 보이던 엄마에게도 영어는 언제나 외국어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겠지...
슬초네의 요절복통 Bilingual 끝말잇기. 서로의 한계에 부딪혀 대화를 포기하기보다, 서로를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걷어내고 끝없이 이어가는 부모와 자녀의 대화. 그래서 서로를 더더욱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우리.
이민 2세대 자녀와 함께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독자님들도  긴 여행길에서 서로를 알게 되는 이 게임에 한 번 도전해 보심이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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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심연 12-07-17 03:03
답변 삭제  
재미있게 사시네요. 슬초빠가 건강하다니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친구생각나서 싸이 뒤지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안부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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