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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가 살아남는 법 (5)
엔리크 왕자 : 항해는 필연이고 삶은 우연이다
DATE 08-04-11 10:52
글쓴이 : 이호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여행하는 자가 승리한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많은 사건과 깊은 울림을 담고 있는 문장이다. 결국에는 여행하는 자가 승리하지 않았는가, 탄식과 함께 회한에 잠기기까지 하는 이유는 이 한 마디에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갈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과거는 정교하고 우수하며 동시에 난해한 시험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난코스를 통과한 엘리트들이 결국에는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었다. 사서삼경에 머리가 굳어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한 치자(治者)들과, 우물에 갇힌 탁월한 개구리들을 상전으로 모셔야했던 민초들의 비극이다.
같은 시대에 서양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밀림을 헤치며 전진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상놈들이 할 짓이다. 비가 와도 뛰지 않는 양반들이 어떻게 늪을 건널 것이며 야수와 싸울 것인가.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이 ‘서양 오랑캐’라고 불렀던 그들이 세상을 정복했고 오랑캐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했다.
 
향료에서 시작된 지리상의 발견
세상은 결국 용기있는 자의 몫이다. 그 용기의 의미를 따지는 것은 철학과 종교의 몫이고 용기가 진행되는 과정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윤리와 양심의 몫이며 용기의 가치에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의 영역이겠지만, 이 모든 작업이 가능하도록 재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용기있는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이다. 
서양인들의 용기가 용암처럼 분출했던 사건을 역사는 ‘지리상의 발견’으로 소개한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며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하던 시절이다. 수억 혹은 수십억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엄청난 사건들은 아주 작은 가루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향료이다.
중세를 지날 때까지, 유럽의 식탁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인도산 향료가 요술과 같은 조화를 부렸다. 후추, 무스카트, 생강, 계피들이 들어가면서, 과장해서 표현하면 ‘먹이’가 ‘음식’으로 순식간에 진화한 것이다.
입을 중독시킨 향료들은 계속해서 코를 공략했다. 아라비아의 방향제, 짙은 사향, 숨막힐 정도로 독한 용현향 등이 여성들을 매료시켰다. 수천 수만의 교회에서 피워올리는 향 내음을 맡으며 신자들은 경건심에, 교회는 향료 소비에 고취되어 갔다.
문제는 그 향료들이 유럽에서는 단 한 톨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도산 향료가 유럽에 도착하기까지, 열두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폭리에 폭리가 더해졌다. 12세기에는 후추의 낱알 하나 하나의 알갱이를 세어서 값을 매겼는데, 무게당 가격이 은과 같았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알만하다.
따라서 지리상의 발견을 주도한 탐험가들의 목적지는 인도였다. 이슬람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 직항할 수 있는 빠른 항로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비용의 천배가 넘는 이윤을 남기리라고 그들은 계산하고 있었다.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의 도전
작은 후추가루와 함께 역사의 변혁을 주도한 나라 역시 작고 보잘 것 없었던 포르투갈이다. 육지로는 전 국토가 오랜 우호국이었던 스페인과 맞닿아있기에, 그들이 야망을 품는다면 바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 유일한 바다로 여겨졌던 지중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있으니, 그마저 불리했다. 남은 것은 서쪽과 남쪽의 대서양인데, 그곳에 대해선 무시무시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개다. “거기에서 어둠의 심연이 시작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 죽음의 땅에 발을 디디면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회귀선 근방의 바다는 태양열 때문에 펄펄 끓고 있어서 선판과 돛대는 불붙고, 분화구같이 황폐하기만 한 사탄의 나라에 발을 디디려는 기독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검둥이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포르투갈은 작고 가난한 채로 살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었고 결론이었다.
상식과 통념과 정설이라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을 역사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영웅의 범주에 들만한 인물이 엔리크 왕자다. 그는 가끔 희한한 나무들이 해안가에 밀려오는 장면에 주목했다. 어딘가에 거대한 대륙이 있어서 그곳의 나무들이 떠내려온 것이라면, 저주니 재앙이니 하는 말들이 공허한 미신이라면, 남쪽과 서쪽 바다를 돌아서 인도에 도착하는 빠른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 포르투갈은 단숨에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안고 그는 무려 50년간이나 인도 항해와 대서양을 향한 탐험을 준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포르투갈은 가장 뛰어난 선원과 선박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깨뜨려야 할 우상
엔리크의 비전은 불과 한 세대만에 눈부신 결실을 맺었다. 바르돌로뮤 디아스는 희망봉을 돌았고 바스코 다 가마는 숙원이던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유럽 끄트머리의 약소국이었던 포르투갈은 뱃길을 통해서 수천 배나 더 큰 영토를 정복했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열어간 시대의 정신을 뱃사람들의 오랜 격언으로 소개한다. “항해는 필연이고 삶은 우연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미신이 넘쳐난다. 숙명이 필연이고 체념이 필연이고 한계가 필연이며, 모험과 도전과 용기는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우상은 인간을 세뇌한다. 망치를 들어 우상을 깨뜨림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엔리크는 항해의 왕자가 되었다. 강한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자가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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