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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로맨스
등소평 : 혁명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도 감정을 숨기는 것은 못하겠소
DATE 08-09-12 11:26
글쓴이 : 이호      
청마 유치환은 노래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청상과부 이영도 선생과의 애틋한 사랑으로 평생 안타까이 살았던 생애를 생각하면, 아예 정 없는 바위 되기를 기원한 심정이 아련이 떨려온다. 피가 식은 다음에야 돌처럼 비정할 수 있을 지 몰라도, 피가 뜨거운 동안에 그럴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다.
혁명의 시대, 함성으로 흔들리고 피로 얼룩진 대지 위에 사랑과 이별의 씨앗이 싹튼다. 등소평은 세 번 결혼했다. 첫 부인 장천원은 1927년, 그의 나이 스물 세 살에 만났다. 두 살 위의 연상이었던 그녀는 150센티미터의 등소평보다 키도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강서성 회창현에서 마주쳤을 때, 남자는 당의 지령을 전달하는 중앙 관리였고 여자는 지방 책임자였다. 등소평은 젊은 여자를 심부름꾼으로 오해하여 말했다. “나를 당신네 현 위원회 서기한테로 안내하시오.”
 
여장부와의 만남과 사별 
평소 중앙당의 오만불손함에 분개하고 있던 차에, 자신을 안내원 정도로 여기는 태도에 여걸은 분노했다. 지방차별과 남녀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반응은 그녀 특유의 신랄한 어조로 터져나왔다. “땅딸보 아저씨, 예의를 갖추는 게 어때요? 지방에 내려오면 당신같이 당 중앙에서 빈둥거리던 사람은 마음이 편하지 못할걸요?” 
예상치 못한 거친 태도에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놀란 등소평은 잠시 후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여자쪽에서 놀랐다. “욕설을 듣고도 뭐가 그렇게 즐겁죠?” 등소평은 말했다. 회창현의 서기가 욕을 잘한다고 해서 나이든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은 여자인줄 몰랐다며, 껄껄 웃었다.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 심하게 구는 자신에게 오히려 통크게 웃어제끼는 키 작은 남자에게 은근한 매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장부는 한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좋소. 당신같이 말이 잘 통하는 남자 만나기도 힘들거요.” 여유있는 듯 웃음을 흘리던 등소평의 얼굴이 빨개졌다.
반년 후에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4년만에 장천원이 난산 끝에 사망하면서 사랑은 깨어졌다. 등소평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몸이 눈에 띄게 야위어졌다. 보다 못한 주은래가 충고했다.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하오. 칼날 위에 누워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왜 남녀간의 감정에 빠져서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시오?”
등소평의 대답이다. “인생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런 여자가 죽었는데 어찌 상심을 안할 수 있겠소? 나는 혁명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감정을 감추는 일은 정말 못 하겠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혁명가들의 대화다.
 
배신과 비극으로 끝난 재혼
두 번째 부인 김유영은 1931년 스물 일곱에 만났다. 그녀는 사회민주당 세력에게 생명을 잃은 공산당원의 딸이었다. 등소평이 그들을 숙청했기에, 김유영에게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준 은인이 된 셈이다. 열 여덟의 처녀는 젊은 공산당 지도자를 찾아가서 부탁했다.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현 위원회에서 일하도록 해주십시오.” 함께 일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이듬해에 결혼했다.
그러나 재혼의 결말은 또 한 번의 비극이었다. 1933년 모택동 노선을 따르던 등소평이 숙청당할 때 김유영은 남편을 배신했다. 군중집회에서 연사로 등장하여 전 남편을 비난했다. 뿐만 아니라 등소평의 프랑스 유학 동기이며 같은 방에서 지내기도 했던 이유한과 재혼하기까지 했다. 억울하게 욕설과 구타를 당하던 키 작은 사나이가 출세가도를 달리는 키 크고 잘생긴 친구와 그 품에 안긴 옛 아내를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모멸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배신한 아내의 행로는 통속적인 연속극처럼 불행했다. 1937년 이유한은 김유영을 ‘병치료와 학습’이라는 구실로 모스크바로 보내버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얼마안가 정신병으로 사망했다. 혁명으로 아버지를 잃고, 복수해준 혁명가와 결혼했다가 배신하고, 다른 노선의 혁명가에 버림받아 타국에서 미쳐서 죽은 비감한 여인이다. 격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남녀들의 인생행로가 드라마 같다.
 
세 번째 결혼과 해피엔딩
세 번째 부인 탁림은 열두살 연하로, 1939년에 만났다. 인연을 만들어준 인물은 전설적인 명장 유백승이었다. 그는 중매에도 탁월한 전략을 발휘했다. 일단계로 스물 세 살의 탁림이 출연하는 군중집회에 등소평을 참석시켜 자연스럽게 호감을 갖도록 했다. 이단계로 탁림을 아예 등소평의 부하로 임명하여 자주 접촉을 갖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고 2남 3녀를 낳았다. 탁림을 만난 이후, 등소평의 삶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시대의 풍운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등소평은 두 번 더 실각했고 가족 모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 파란만장한 세월을 이겨냈다. 마침내 등소평은 두 번 모두 재기에 성공했고 결국은 대권을 거머쥔 최종 승자가 되었다.
몇 해 전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코메디언 김형곤이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던 인터뷰가 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벌고 성공해도 가정에 실패했던 저는 실패자입니다.” 일에 성공하기도 어렵고 사랑에 성공하기도 어렵다. 일에서 세 번 극복하기 어려운 실패를 겪었던 등소평은 결혼생활에서도 두 번 쓰라린 비극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일과 가정 모두를 성취하고야 말았다. 작은 거인이 더더욱 커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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