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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즈벨트 : 패배하는 그 순간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최선의 시간이다
패배를 통한 승리
DATE 08-12-04 20:02
글쓴이 : 이호      
‘속담’에 대한 두산 대백과사전의 정의다: “어조(語調)가 좋고 간결하며, 표현이 정확하다. 그래서 잘만 사용하면 큰 효과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남용하면 싫증이 나고, 상투적인 말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격언에서 보는 것과 같은 깊이는 없다.”
잘하면 효험이 있는데 못하면 싫증이 난다니, 글쓰는 이로서는 위험부담이 있다. 이럴 때는 무언가와 섞는 편이 안전하다. 마침 사전에서는 격언을 깊이있는 말로 추켜올린다. 속담과 격언을 버무려서, 요즘 기내식으로도 제공된다는 비빔밥을 만들어보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를 재료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를 조미료로 사용하면 된다. 재료와 조미료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역시 행동이다. 고생이나 실패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성공은 더더욱 마찬가지다.
 
인생은 행동하는 자의 편이다.   
소아마비로 오랫동안 휠체어 신세를 졌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관통하는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행동’이었다. 발병 전이나 후나 그는 한결같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젊어서의 행동은 무모했고 그 결과는 고생스러웠다.
보스·계보정치에 대한 도전
스물 여덟에 최연소 주지사가 된 그는 곧 바로 도전장을 던졌다. 상대는 뉴욕의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던 파벌이었다. 당시 연방 상원의원은 직접 선거가 아니라 주의원들에 의해서 선출되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스와 계보에 의해서 지명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에 상도동과 동교동이 있었다면, 뉴욕에는 태머니파가 있었다.
겁없는 신인 루즈벨트는 보스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들이 반격하는 것은 당연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 강아지에게 수많은 조소가 쏟아졌다: 풋내기 대학생, 속물, 사이비 정치인. 태머니파의 보스인 빅 팀 설리반은 직설적인 한방을 날렸다: 아주 거만한 친구 루즈벨트!
이쯤되면 기가 죽을 만도 한데, 루즈벨트는 역시 루즈벨트였다. 반격이 거셀수록 공격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멋진 싸움을 최고로 사랑한다. 지금 내가 옳기 때문에 재미있는 싸움인 것이다.” 하늘이 낸 인물다운 말이다.
멋지고 재미있는 싸움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1912년의 선거에서는 이겼고 1914년의 선거에서는 졌다. 단기간의 승부로 보면 일승일패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승자는 단연 루즈벨트였다. 승패를 떠나, 도전하는 용기에 감동한 동지들이 규합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평생을 함께 하며 뉴욕주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간 인물들이 이 시절에 휘하로 모여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루이스 하우의 경우, 처음에는 루즈벨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독립심과 투쟁 정신에 매료되었다. 나중에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용감한 친구야.”
 
부통령 후보 출마와 패배
승패를 반복하며 루즈벨트는 점차 노련해졌다. 이기는 법도 배웠고 지는 법도 배웠으며 앞으로는 이기지만 뒤로는 지는 법, 오늘은 지면서도 내일은 이기는 법도 익혀갔다. 큰 판은 언제나 작은 판에서 단련된 선수를 요청한다. 뉴욕 주에서 시소전을 벌이던 그는 1920년 전국적인 싸움판에 뛰어들 기회를 얻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제임스 콕스가 38세의 루즈벨트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한 것이다.
러닝 메이트라고 하지만, 그 시절의 부통령 후보는 2선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무엇에든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루즈벨트는 관행에도 또 한번 도전했다. 그는 특급열차를 타고 32개 주를 방문하여 1,000번 이상 연설을 하였다. 대통령 선거의 메인 이슈는 국제연맹 가입이었다. 1차 대전 중 유럽을 방문하여 50만구의 시체가 누워있는 참혹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루즈벨트는 민주주의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반면 공화당 후보 워런 하딩과 캘빈 쿨리지는 외국 문제에 대한 불개입을 주장했다. 미국은 미국으로 번영하면 되는 것이지, 골치아픈 유럽 국가들의 전쟁에 개입할 이유도 없고 국제연맹 같은 것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승패를 좌우한 것은 유권자들의 안정심리였다. 전쟁으로 잿더미만 남은 유럽을 목격한 미국인들은 자국의 평화와 번영에 더 관심을 가졌다.
워런 하딩과 캘빈 쿨리지는 61%의 지지를 얻고 48개 주 중 37개 주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훗날 하딩은 ‘무능의 대명사’ 내지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유명해진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인물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무능했다고 해석해야 할까.
 
거목은 들판에서 자란다
승자 하딩이 역사의 패자가 되었다면, 패자 루즈벨트는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러셀 프리드만의 평가다: 그는 미국땅을 사방팔방으로 다니며 와이오밍 주의 목동들과 캔사스의 농부들, 시카고의 공장 노동자들과 앨라배마의 소작동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항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선거 운동가로서 숙련되어 갔고 세련된 연설가가 되었다"
민심이 곧 천심이니, 민심읽기를 배워간 루즈벨트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도 논리적인 귀결이다. 패배가 확정된 후 그는 말했다. “패배하는 그 순간이 바로 미래의 승리를 위한 최선의 시간이다.”
속담으로 시작한 글을 책 제목으로 마무리한다. 예언자로 존경받는 에이든 토저의 명저 ‘패배를 통한 승리’이다. 젊은 날의 숱한 패배가 있었기에 루즈벨트라는 거인이 자랐다. 따뜻하고 안락한 온실이 아니라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는 들판에서, 거목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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