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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세계대전, 그리고 루즈벨트의 미소
프랭클린 루즈벨트 :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DATE 08-12-18 19:13
글쓴이 : 이호      
러셀 프리드만의 저서에는 유사한 표현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아브라함 링컨 이래 이와 같이 격렬한 대립이나 화가 난 논쟁을 받아들이는 대통령이 없었다”, “의회에서 이 계획에 대한 논란은 남북전쟁 이래 가장 격렬하고 분열된 것이었다.” 남북전쟁은 극단적인 대립의 상징이다. 노예해방의 고상한 이념과 연방 존립의 정치적인 목표, 동시에 남부와 북부의 경제 이익이라는 현실적 계산의 모든 영역에서 공존할 수 없었던 양대세력이 결국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승부를 가렸던 사건이다.
따라서 남북전쟁과 링컨에 자주 비교된다면 꽤나 불쌍한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안타까운 비유의 대상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대공황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시도한 뉴딜정책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의 분분하다. 확실한 점은 엄청난 비난의 보따리를 안겨준 것이다.
 
남북전쟁 이래 최고의 분란
1935년 부유층의 세금인상 법안이 발표되었다. 빈곤층 구제를 위한 재원확보가 목적이었다. 당연히 거센 반대가 잇달았다. 현대판 귀족의 가문에서 성장한 대통령이 오히려 못 가진 자의 편에 섰기에, 그는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미치광이와 공산주의자로 매도되었고 나라를 망칠 역적으로 비판당했다. 심지어 코네티컷 주의 클럽에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금지되었다. ‘백악관에 있는 사람’이 그의 별칭이었다.   
개혁은 협공을 초래한다. 우편과 좌편을 동시에 적군으로 맞아야 하는 것이 개혁자의 숙명이다. 우파가 개혁의 파괴성에 분개했다면 좌파는 개혁의 미진성에 분노했다. 공황을 야기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뜯어고쳐서 은행, 철도, 공공시설의 국유화를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목숨을 걸고 추진한 개혁은 한낱 미봉책으로 치부되었다.
1937년에는 대법원이 강력한 반대엔진을 가동했다. 아홉명의 대법관들은 행정부가 제출한 16개의 법안 가운데 11개를 거부해버렸다. 제대로 당한 루즈벨트는 반격에 나섰다. 대법관 숫자를 늘려서 자신의 뜻에 맞는 인사 여섯명을 추가하고자 했다. 프리드만은 “이 쓸데없는 시도가 그의 재임기간 중 가장 큰 소란을 야기시켰다”고 평가한다.  
어디 뉴딜정책 뿐이랴. 루즈벨트의 일거수 일투족은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켰다. 행정부에 최초로 여성 각료를 입각시켰고, 이전의 대통령들이 임명한 흑인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흑인들을 공직에 배치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자식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만은 막으려는 모성애가 결집한 ‘어머니 십자군’의 반대를 무릎쓰고 2차 세계 대전 참전을 결정하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 이래 불문율처럼 지켜온 전통을 깨고 네 번이나 대통령을 연임한 것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처사로 규탄되었다.
 
장애와 비판과 난세를 견뎌낸 미소
개인적으로 소아마비였고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비판당한데다가 시대적으로는 난세 중의 난세였다. 거대한 재앙으로 기억되는 대공황, 역사상 최고로 참혹했던 세계 대전, 노동자들의 시위와 유혈진압, 하루 아침에 태평양 함대가 궤멸되고 삼천 오백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만 기습이 그의 치하에서 일어났다.    
이쯤되면 우울증 환자에다가 위장약을 달고 다니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 있는 노이로제 환자가 탄생할 만한 상황이다. 가만히 있어도 중압감에 짓눌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했으니, 몸인들 마음인들 배겨나겠는가. 희한하게도 루즈벨트는 정반대였다. 그의 사촌 니콜러스가 남긴 회고다.
“그의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나는 수영장 수면 위에 솟아 있는 그의 잘생긴 얼굴과 온화한 논평들을 대할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불가능한 것이야, 이렇게 기쁨에 가득 차고 젊음이 가득한 얼굴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니…’”
언제나 즐겁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줄 알았던 그의 면모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루즈벨트의 미소’가 그것이다.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면서 활짝 웃는 특유의 표정이 고유명사처럼 불리워졌다. 그의 웃음에는 제한이 없었다. 어떤 것도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언젠가는 이런말도 남겼다. “그것 참 목발처럼 우습군요.”
평생 목발 신세를 져야 했던 비애의 우물에서 그는 웃음의 샘물을 끌어올렸다.   
 
웃는 자가 이긴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인물에게는 머리가 터지고 골치가 썩을 상황도 오히려 유쾌한 여정의 일부였다. 친구들에게 루즈벨트가 자주했던 말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통상장관 조세 존스는 해임되면서 대통령을 인품이 모자란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책임을 지고 많은 일을 처리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했던 그의 일과는 격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기에 더 쉽게 피로했지만 그래도 매일 수영을 했다. 어릴적부터 우표수집을 좋아해서 환갑을 넘긴 뒤에도 우표를 만지작거리며 밤을 새웠다. 소년처럼 친구들과 담소하고 포커에 몰두했다. 일도 즐겼고 휴식도 즐겼기에, 난세에 격전을 치르면서도 즐거운 인생이었다.
루즈벨트가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대편은 후버였다. 후버와 루즈벨트는 자주 보이는 표정에서부터 극명하게 달랐다. 한쪽은 웃지 않았고 한쪽은 웃었다. 웃는 사람이 이겼고 즐겼고 마침내 해냈다. 웃을 일 찾기 어려운 세상이어도, 울면서라도, 웃으면서 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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