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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위대한 지도자들의 바보놀음
프랭클린 루즈벨트 : 얄타 이후 소련의 태도변화를 불안과 근심으로 지켜본다
DATE 09-01-09 12:08
글쓴이 : 이호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의 성적은 처참했다. 한국전 2대 0 패배, 뒤이은 포르투갈전 4대 0 참패, 조별 예선탈락은 일찌감치 확정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폴란드 선수들은 미국에게만은 기필코 이기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인다.
결과는 3대 1 승리. 폴란드 언론은 승리를 대서특필했다. 아시아의 습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두 차례 패배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진가가 나타났다며, 초라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폴란드가 미국에게는 반드시 이기려고 기를 쓴 이유, 한 게임 승리가 두 게임 패배를 무마할만한 기쁨으로 해석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 6월 유로 2008 폴란드와 독일전,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수 포돌스키가 두 골을 넣었다. 보통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너무 좋아서, 10여초간은 아예 정신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유로대회처럼 중요한 시합에서 두 골이나 넣은 포돌스키는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눈물을 흘렸다. 전세계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보도한 ‘포돌스키의 눈물’, 연유는 또 무엇일까.   
 
‘포톨스키의 눈물’에 담긴 역사
축구는 축구만이 아니다. 하기야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인생살이에서 어느 것인들 그것 하나로만 이야기 할 수 있으랴. 현대사 분야의 원로 최정호 박사는 폴란드의 전설적인 작곡가 펜데레츠키를 만났던, 1985년의 밀라노를 추억한다. 두 사람이 1933년생으로 동갑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최정호가 그해가 히틀러와 루즈벨트가 집권한 숙명적인 해라고 말하자 펜데레츠키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루즈벨트… 그 위대한 바보녀석 말이군!”
최정호의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1’을 인용한다. “펜데레츠키가 내뱉듯이 던진 그 한 마디 속에 폴란드가 겪어온 현대사의 아픔이 응축되어 나에게 뜨겁게 교감되어 오는 듯만 싶었다. 2차 대전 중에 너무나 많은 것을, 너무나 헤프게 스탈린에게 양보함으로써 수많은 동유럽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현대사의 아픔이…”
미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예선, 그리고 포돌스키의 눈물에는 아픈 역사의 사연이 담겨있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미국의 서투른 양보로 폴란드는 소련 지배 하에 공산화되었다. 다수의 폴란드인들은 조국을 떠나 독일로 망명했다. 고향을 짓밟은 공산당을 떠나 신세를 의탁해야하는 곳이 2차 대전의 침략국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독일이었으니, 기가막힌 운명이었다. 그 망명자들의 아들 가운데 후일 독일 국적을 취득하여 국가대표 선수까지 된 오늘날의 포돌스키가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의 진원지에 루즈벨트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얄타회담과 ‘전리품’ 폴란드
1945년 2월, 추축국의 하나였던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연합국 세 거두가 만났다. 소련의 요제프 스탈린, 영국의 윈스틴 처칠, 그리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 회담의 주제는 독일과 일본을 패배시킬 전략, 전쟁 종료 후 독일 처리, 세계 질서의 재편 등으로 거대하고 묵직했다.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된 논제는 폴란드였다. 강대국도 아니었던 폴란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은 강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소국의 다른 이름은 ‘전리품’이다. 특히 소련이 이 전리품에 탐을 냈다. 그들의 논리도 나름대로 타당했다. 히틀러가 폴란드라는 통로로 진격하여 소련인 2천만이 죽는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입혔으니,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폴란드에는 친소련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극도로 경계하던 처칠은 폴란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치열한 설전 끝에 거두들은 결국 합의점에 도달했다. 모든 민주세력의 합의 하에 가능한 한 빨리 아무런 구속없는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폴란드 정부를 조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타당한 말이다. 당연히 모든 민주세력이 합의해야 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 동시에 누가 들어도 막연하다. 누가 민주세력인가?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보듯이 언제 독재자들이 민주주의 안한다고 한 적이 있었는가? 자유 선거를 보장할 물리적인 수단은 무엇인가?
세련되고 우아한 외교적 수사 속에 폴란드의 운명은 버려졌다. 결국 1947년 소련 점령 하에 이름 뿐인 자유 선거가 치러졌고 폴란드는 오랜 기간 공산독재로 신음하게 되었다.    
 
루즈벨트의 치명적인 실수
폴란드의 노예화에 대한 비난은 스탈린에게 우호적이었던 루즈벨트에게 쏟아졌다. 비판론자들은 스탈린을 믿고 처칠을 의심했다는 혐의를 들어 ‘망령이 나서 제 정신이 아닌 늙은이’로 비난하기도 한다.
회담이 끝나고 한달여 지난 후, 동유럽에서 패권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노골화하는 소련에 대해서 루즈벨트는 처칠에게 말했다. “나는 얄타회담 이후의 소련의 태도변화를 불안과 근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믿다가 얄타회담 두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과 소련이 우호적일 거라니, 소아마비와 대공황과 히틀러와 싸워서 이긴 루즈벨트가 그런 소리를 했다니, 펜데레츠키의 표현이 절묘하다. 위대한 바보녀석!
한편으론 사람이기에 누구나 오판하고 실수할 수 있다는 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수의 댓가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가서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면, 인간에 대한 인내와 이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강대국 위대한 지도자들의 바보놀음에 약소국의 운명이 휘둘리고 무고한 백성들이 피눈물이 엉켜있는 채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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