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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드 아데나워 :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DATE 05-03-17 00:00
글쓴이 : 이호      
용기백배한 새해



독일인들은 1945년을 “스툰데 눌(Stunde null)”이라고 부른다. “제로(Zero)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제로로 돌아간 시대 상황에 대한 문학적인 표현이다. 히틀러와 나찌의 광신도들이 일으킨 세계 대전의 결과, 독일에서만 1천만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명이 다쳤다. 산업 시설은 1938년과 비교해볼 때 3분의 2가 파괴되었다. 학교 아동의 절반 이상이 결핵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토의 4분의 1을 잃었고 남아있는 지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네 강대국에게 점령당했다. 외국군의 점령 과정에서 강간과 약탈이 잇달았다.

독일인의 정신적 상황은 더욱 비참했다. 미치광이 독재자를 추종했던 어리석은 민족,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범, 6백만의 유대인을 독가스실로 몰아넣은 범죄자로 손가락질 당하며 게르만 민족의 자부심은 추락할 대로 추락해있었다. 영국의 처칠은 적어도 20년간 독일을 점령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주권을 회복하고 번영을 이룬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라인강의 기적

그런데, 월드컵 축구장에서나 이루어질만한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불과 십수년만에 독일(서독)은 나찌의 망령을 깨끗이 씻고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등장했다. 전후의 폐허를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게 성장한 경제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400년 동안 25차례나 전쟁을 치렀던 프랑스를 포함한 과거의 적대 국가들과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외교적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마술사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휘둘렀단 말인가?

베를린 자유대학의 정치학자 아르눌프 바링의 책 첫장이 도깨비 방망이의 정체를 알려준다. “처음에 아데나워가 있었다” 서독의 믿기지 않는 부활은 초대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963년 14년간의 수상직에서 물러나는 아데나워는 독일 공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아데나워의 생애를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용기”였다. 밤이 깊으면 별이 더 빛나듯, 아데나워의 용기는 고난 속에서 더 찬란하게 빛났다.



시련 속에서 피어난 용기

1917년 43세의 아데나워는 쾰른 시장으로 취임했다. 독일 역사상 최연소의 명시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에게 1933년 위기가 찾아왔다. 히틀러가 퀼른을 방문했을 때 아데나워는 공항에도 나가지 않고 비서를 대신 보냈다. 나찌의 행동 대원들이 라인강 다리에 내건 깃발도 강제로 철거해버렸다. 히틀러를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용기였고, 그 결과로 보통을 넘는 보복을 받았다. 나찌는 그를 시장직에서 쫓아냈고, 히틀러의 행동 대원들은 그를 창밖으로 내던지려고 했다. 그때부터 십년이 넘는 세월은 가택 연금, 투옥, 도피, 은둔의 연속이었다.

1935년 은거 중이던 아데나워의 손에는 요셉 콘라드의 『태풍』이 쥐어져 있었다. 선장이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배와 선원들을 구한 것은 선장의 지능과 지식이 아니라, 인내와 끈질긴 투지였다. 이때 이미 아데나워는 난파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살려내야할 선장으로서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훗날 아데나워는 독서에 몰두했던 은둔 생활을 회고하며, “인격적, 정신적 발달에 유익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시련은 용기있는 자의 꽃을 피워주기 위한 거름이 되기도 한다.

1945년 나찌의 패망과 함께 아데나워는 퀼른의 시장으로 복직했다. 아데나워는 하루 18시간씩 일하며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기 위해 정열을 불태웠다. 그러나 또다른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퀼른의 점령군인 영국군은 아데나워가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을 박탈하고 1주일 안에 쾰른을 떠나도록 명령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용기

이 충격으로 아데나워의 아내도 앓아누웠다. 나찌에게 당한 고문의 후유증과 남편의 정치적 몰락에 대한 상처로 결국 그녀는 아데나워가 수상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아데나워는 일흔 두 살의 나이에 개인적으로는 두 번이나 아내를 잃은 홀아비요 정치적으로는 평생을 몸바쳤던 퀼른에서 추방당한 망명객이 되었다. 이 무렵에 그를 방문했던 전 총리 하인리히 브뤼닝의 회고에 의하면 아데나워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울증도, 개인적 불행도, 정치적 불운도 그의 용기를 꺽지는 못했다. 퀼른에서 추방당한 아데나워는 기민당 창당에 관여하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퀼른의 시장직에서 쫓겨난 덕택에 독일의 총리가 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위기는 용기있는 자의 기회다.

새해를 맞이하면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복을 빌어준다. 서로의 안녕을 소원하는 눈빛에서, 주고받는 덕담에서 “정”이라 불리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필자도 독자들에게 덕담을 건네고 싶다. 용기 백배한 새해가 되시기 바란다. 시련을 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 위기를 기회로 선용할 수 있는 용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서는 용기가 한인들에게 가득하기를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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