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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DATE 07-04-27 00:00
글쓴이 : 고광민      
성선설(性善說)이냐 성악설(性惡說)이냐 하는 것은 해묵은 논쟁이다. 하지만 어떤 쪽이든 인간은 악하거나 악해질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원시성을 알레고리(allegory) 형태로 밀도있게 그려낸 작품들 로 유명한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은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명작,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에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얼 마나 잔혹하고 비정하게 원시적으로 퇴행(退行)할 수 있는지 촘촘하게 잘 보여준다.
문명(文明)으로부터 원시(原始)로 이식(移植)된 일단의 소년집단은 소년대대장 랠프의 지도하에 처음엔 그들이 이전에 속했던 사회의 문화적 도구들을 차용해서 낯선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미지의 고립된 섬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야생의 위협에 잭등은 이성이 마비되고 말초적 욕구에 서서히 굴복한다. 그리고 공포 를 이겨내기 위한 광기와 오판에 의한 살인, 제동없는 집단 히스테리(mass hysteria)앞에 윤리적 제어력은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간 난쟁이들의 티없이 맑은 눈빛과 듣기만 해도 기분좋아지는 까르륵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이론의 정치(精緻)고 뭐고 떠나서 우리 인간은 순 백색으로 태어나는가보다 생각을 한다. 특히 잉태의 조심스러움과 두번 다시 겪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다짐하게 만드는 산고를 통해 아기를 세 상에 내놓는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천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러한 믿음은 많은 비행을 저지른 미성년 자의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그럴리가 없어요’ 원래 참 착했던 아인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라고 말하는 원초적인 근 거가 된다.

부모 슬하의 소왕국에서 황제처럼 한 점의 걱정꺼리도 없는 강구연월(康衢煙月)을 구가(謳歌)할 땐 부모의 기대와 바람대로 성군(聖君)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거짓말, 공갈, 비방, 속임수, 욕설, 폭력등을 배우기 시 작한다. 일견 이런 것들을 배우는 곳이 정해진 것 같지만 기실 그 출처는 다양하여 배제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든 아이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성덕군자(成德君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아이들도 이런 부정적 행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초점은 극단을 피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관통하는 근본논리인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경쟁이란 결국 우월감과 열등감을 파생시키게 되어있다.

이런 우월감과 열등감이 잘 소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느 시기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한다. 우월감이 지나쳐 힘을 과시하거나 남을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불행의 씨앗을 제공한다. 열등감이 패배감으로 변질되어 자포자기, 허무주의를 부추기고 자살같은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다 른 경우에는 골깊은 열등의식과 박탈감이 이긴자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 등 공격성향으로 전화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크 다. SK 와이번즈의 신인 유망주, 위대한 선수의 투수의 꿈을 접게한 것도 그의 전력에 선명히 남아있는 ‘퍽치기’ 전과가 악질적인 반 사회적 범죄 전력으로 인식되었고 그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이러한 갈등관계 가 얽히고 꼬여  열등감의 원천인 사회적 강자에게 분출되지 않고 대상을 바꿔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게 퍼부어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 군중 심리까지 결부되어 소위 ‘왕따’라고 하는 집단 따돌림이나 ‘Bully’와 같은 집단학대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 수반된 언 어적 육체적 폭력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사회에 돌아온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 더 궁지에 몰리는 일이 생기 는데 피해 학생을 원인제공자로 비난한다든지 가해 학생의 인권문제가 대두되는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 가해 학생의 미래를 고려해 면죄부를 남 발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것임은 자명하다.
몇 년전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교 총격사 건도 결국 체격이 건장한 운동부원들에게 평소 놀림받고 학대받던 학생들의 복수가 주된 모티브이며 지난주 모든이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 던 버지니아텍 총격사건도 자신에게 비참하게 수치심을 안긴 이들에 대한 분노의 왜곡되고 파괴적인 표출이었다. 좀 더 빨리 사회가 이들의 구 제와 치유에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씁쓸한 아쉬움이 크다.
파리대왕이 “Lord of the Campus”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인간은 악 한 가치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하는 유니버셜한 주제를 태평양의 절해고도(絶海孤島)라는 독특한 세팅속에서 잘 그려낸 작품이 가치의 상대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대학생들에게 크게 어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개인의 심중에 일어나는 시기, 증오, 교만 등이야 어찌 하겠 냐만은 우리에게는 욕설, 폭력, 집단구타, 따돌림, 조롱 등의 사회적 행악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약한 인간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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