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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이야기
DATE 07-05-11 00:00
글쓴이 : 고광민      
요즘 와인 열풍이 무섭다. 각종 와인 동호회에 등록이 빗발치며 와인가이드인 소몰리에(Sommelier)에 대한 관심이 이례적으로 높다. 퇴근무렵이면 삼삼오오 의기투합하여 와인바로 향하는 30-40대 중고 신세대의 발길이 끊 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추세로 가다간 세계 최고 일인당 와인 소비국인 프랑스를 제끼는 ‘이변’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과열은 경계해야 할 줄 안다. 와인이 좋은 술임에는 틀림없지만 와인을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강장제처럼 여기고 매끼 마신다면 알콜중독으로 가 는 직행열차를 탄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기실 와인보다 광의로 보아 과일주의 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그 범위도 범세계적이 다.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이면서 수확과 잔치의 주관자임을 보면 인류의 역사는 와인의 역사와 같다고 보아도 크게 과가 없을 듯하다. 곡주(穀 酒)가 경작을 시작한 이후에 등장했을 것임을 고려하면 수렵 및 채집 경제활동을 영위하던 먼 선조들이 일설(一說)대로 원숭이에게서 아이디어 를 얻었든 말든, 먹다남은 열매에서 얻어냈을 과실주(果實酒)야말로 곡차 형제들 중 가장 맏이임에 분명하다. 서구권 국가들에선 이미 와인이 식사의 일부처럼 된지 오래이며 음주가무(飮酒歌舞)에 일가견이 있던 우리 선조들도 매실주니 국화주니 하여 과실이나 화초를 이용해 진미(Delicacy) 를 즐겨왔다.
오딧세우스(Odysseus)와 그의 수하들이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Cyclops)에게 잡혀 산 채로 삼켜질 위기를 모 면한 것도 기실 와인 덕이다. 가라앉은 찌꺼기까지 기가 막히다는 오딧세우스의 밀어에 넘어간 거인은 거나하게 취해 거구의 몸을 바닥에 떨구 고 만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티카의 왕은 단신이나 떡 벌어진 어깨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제물이된 동료의 죽음에 벌벌 떨고있 던 부하들을 독려하여 포세이돈의 아들인 자이언트의 외눈에 술독을 꿰어 운반하는데 썼던 목봉을 갈고 벌겋게 달구어 찔러 박는다. The laws of hospitality 를 믿으며 도움을 기대하고 인사차 들고간 포도주가 결국 트로이전쟁의 영웅들을 구해낸 셈이다. 
젊은 호기에 두주불 사(斗酒不辭)하던 필자 역시 와인을 좋아한다. 신앙을 갖기 전인 학창 시절엔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주로 소주를 즐겨했다. 봉천동 일대에 지 천으로 널려있던 푸짐한 돼지갈비집이나 벌건 고추장에 양배추와 간, 곱창을 섞은 순대볶음 냄새가 등천하는 순대타운에선 핀잔을 받으면서도 연신 터져나오는 ‘크’ ‘카’ 하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소주잔이 오갔다. 큼지막한 돼지고기에 대파를 듬성듬성 썰어 터 트려진 계란과 함께 무쇠솥에 부쳐주던 낙성대의 파전집에선 막걸리나 동동주를 빼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하자 고 정하진 않았지만 하숙시절엔 과외 월급을 받아오는 날 양념통닭에 달작찌근하게 깍둑 썰어진 하얀 무우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하숙방에 신문 지깔고 둘러앉아 간만에 맥주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볍게 육류나 어류에 와인을 함께 하는 것을 즐긴다. 무엇 보다 필자가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와인이 자연적으로 잘 숙성된 부드러운 술이며  잔에서 입속으로 옮겨진 한 모금이 혀끝에서 식도를 타고 위장에 흘러내리는 과정을 천천히 음미해야 제격인 술이라는 것이다. 와인이 지닌 숙성이라는 속성은 조리 과정에 들어감으로써 요리 맛을 배가하고 음식에 곁들어 먹음으로써 입맛을 돋구고 소화도 잘 되게 하며 식사의 흥취를 한결 높이고 소중한 시간에 낭만적인 색깔을 배게 하여 멋진 추억거리를 남긴다.
학습도 와인 마시는 것도 대동소이하다. 예습을 하는 것은 마치 와인을 처음 마시는 사람이 한 두잔 맛을 보며 와 인 맛에 눈을 뜨고 즐기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지식체계의 저변을 넓히는 걸 맛본 후 한 학기 혹은 일년 동안 응용을 즐기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익히고 다져두면 받아들인 지식체계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마치 와인 애호가가 와인의 맛과 냄새와 빛깔 과 그 은근한 취함, 그리고 숙성도와 그 배경 지식까지 즐기듯이 말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셔야 할 와인을 병을 수 북히 쌓아놓고 ‘원샷’을 외쳐가며 입에 들이붇는다면 이는 독배(毒杯)를 마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과거 70, 80년대 시절 평소 단백질에 궁하다가 어쩌다 고기먹을 일이 생기면 먹은 고기의 반 이상이 소화되지 않은 채 아쉽게 화장실에서 사라지는 걸 경험으로 알면서도 매번 금붕어처럼 잊은 채 허리띠 풀어놓고 목구멍까지 찰 때까지 상추에 싼 고기를 밀어넣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도 같은 경우이다. 대입시험처 럼 준비해야 할 시험이 여러 과목이거나 포괄적일 경우 이를 단기간에 마치려고 하면 체하게 마련이다. 여유를 충분히 두고 소화할 만큼 차근차 근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내가 기분 좋게 생일상에 올려 준 국산 과실주 생각이 간절하다. 어떤 명품 와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이 술을 약(藥)으로 만드냐 독(毒)으로 만드냐는 마시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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