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5일,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한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22)군이 한국 비하발언으로 인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문제가 된 글은 사건이 일어나기 4년 전인 2005년, 재미동포 3세였던 박재범 군이 친구 하나 없는 낯선 한국땅에 홀로 연습생 신분으로 와 외로움과 훈련의 어려움을 견디던 중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넋두리식으로 올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영어로 올려진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자체의 사용범위를 완전히 무시한 데 있다. 실제로 박재범이 I hate Korean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국을 증오한다기 보다는 단순히 싫다는 정도라고 볼 수 있으며 게이라고 번역된 표현도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만인 9월 8일 오후 12시경, 재범은 2PM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팬카페를 통해 밝히고,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시애틀행 비행기를 타고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사건은 결말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사태는 급반전했다. 언론들이 나서서 문제가 된 글의 번역이 잘못됐음을 알렸고, 이후 그의 홈페이지 곳곳에서 한국인이 되어가며 느낀 동포 3세 청년의 애뜻한 한국사랑이 드러나면서 박재범에 대한 동정여론과 복귀여론은 급물살을 탔다.
그가 한국을 떠난 후 그가 소속돼 있던 그룹 2PM는 정규 1집 앨범을 내며 가요활동을 재개했다. 박재범 군을 제외한 6명의 멤버들은 재범 군에 대해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며 더 큰 인기를 얻었고, 결국 리더없이 정규 1집을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여론의 향방은 ‘재범의 복귀’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당시의 사건이 오력으로 인한 마녀사냥이었다는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컸고, 사건 이후 박재범 군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는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월 25일 소속사 측에서, 갑작스레 “재범군이 사적인 문제로 인해 영구탈퇴 및 전속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혀지면서 지금 한국 사회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인동포들은 미주지역 동포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언짢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고 심지어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직계 중에 한국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곧바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대접받는 게 한국이다.
한국에서는 인기 없는 미식축구지만 흑인혼혈 선수인 하인즈 워드가 큰 활약을 벌여 MVP로 뽑혀 이름을 알리게 되자 각 언론에서는 극찬을 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장타를 자랑하며 주목받았던 미쉘 위 선수를 소개할 때는 위성미라는 이름을 쓰며 한국인임을 강조했다. 김초롱 역시 재미교포로 잘 알려진 선수다. 이들 유명인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는 한없이 관대하다가 슬럼프에 빠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외동포 2세는 속칭 ‘바나나’에 비유되곤 한다.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사고방식은 서양인이라는 것.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인 2세들은 모국을 찾아와도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두번 죽임 당한 꼴
지난 7월 법무부가 발표한 ‘재외동포 국내 거소신고현황’에 따르면 부모가 한국인이면서 현재 외국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 체류 동포는 4만 5,909명에 이른다. 이 중 미국과 캐나다 국적 소유자가 각각 2만 9,727명, 7,384명으로 전체의 80%다.
모국을 찾은 한인 2세들은 한국의 새로운 식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말이 서툴러 어려움을 겪는다. 편안한 미국 생활을 버리고 모국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보기보다는 한국인이 한국말을 못한다는 단순한 논리만 내세우며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미국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고 고민하는 2세들도 많다.
일부는 스스로 원해서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통일된 기준만을 강요하는 한국문화 때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라 한글도 배우고, 한국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한인 2세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박재범 군의 경우처럼 한인 집단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자라게 되면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많아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달라스 한인들도 모국에 대한 상실감과 배신감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플레이노에 거주하는 최 모씨는 “그는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두번 죽임을 당했다. 한번은 잘 알지도 못하는 오역으로 인터넷 마녀사냥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또 지금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형제를 버린 동료들의 배신으로 처참하게 짓밟혔다”고 말했다.
또한 최 씨는 “소속 기획사 또한 가차없이 그를 버렸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 몇 군데만 검색해도 동포 3세의 그가 얼마나 성실한 청년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기획사는 자본의 논리를 가지고 그를 루머 속에 가두고 있다. 기획사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인생 쯤은 하찮은 쓰레기 쯤으로 아는 한국 연예계의 병폐 속에서 순진한 한인 청년의 꿈이 무참하게 짓밟힌 안타까운 사건이다. 재범이 한국인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몰지각한 인종차별에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가난한 국가의 출신은 가난한 사람으로, 피부 색깔이 다르면 적대시하거나 우월성에 빠지는가 하면 선진국 국가 출신 혹은 외모가 출중한 외국인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동경을 보내면서 간혹 이들이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더욱 혹독한 멸시의 시선을 보낸다.
반미감정을 내세우며 미국에 관련된 모든 것을 배척하도록 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서는 조기유학이 필요하다며 외화를 쏟아 붓는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당연시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재범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글로벌 인재가 되라, 세계로 뻗어가자 등 우수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자고 끊임없이 외쳐왔다. 작은 땅에서 이만큼 경제 성장을 이룩해낸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다. 그러나 진정 선진국민,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세계인과 함께 사는 방법, 즉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마녀 사냥’ 일삼는 비뚤어진 네티즌 문화
재범은 이제 겨우 22살인 청년이다. 18살 나이에 한국에 갔으니 홀로 견뎌야 했을 외로움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겪었을 고통은 불 보듯 뻔하다.
재범이 속해있던 2PM은 M.net의 신인 육성 프로그램 ‘열혈남아’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열혈남아의 초기 멤버 13명중에서 3명은 탈락하고 각각 2AM과 2PM으로 나눠져 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열혈남아 방영 약 6개월 후 최종 ‘박진영(현 JYP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자존심’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식 데뷔했다.
이는 과거 음악 그룹이 형성될 때 팀원들이 고생을 함께하며 끈끈한 정을 나눴던 것에 반해 실력만으로 경쟁하며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 시대의 아이돌 그룹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개인적으로 관계자를 찾아가거나 오디션, 각종 대회 참가 등의 노력을 통해 재능이 있다는 것이 인정받으면 연예인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소속사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설립되면서 인재를 발굴, 3-4년씩 훈련을 시키거나 필요한 투자를 거쳐 연예인을 만들어내는 형태가 됐다.
날나가는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받는다고 여겨질 정도다.
대형 소속사들은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할 때 신인들을 끼워서 출연시킬 수도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해당 소속사 연예인들의 활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각 언론사에서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또한 노예계약서로 일컬어지는 사전 계약에 묶여 해당 연예인은 활동하는 내내 지장을 받는다. 따라서 소속사의 대표는 ‘신’과 같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라는 것.
소속사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팀원들 하나 하나를 모아 프로젝트식 음악 그룹을 만들어 연습을 시키고 투자를 한다. 그나마 어렵게 몇 년에 걸친 연습생 생활을 하고 나서 데뷔할 기회가 주어지기만 해도 다행이다. 많은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속사에서 데뷔 시킨 음악 그룹이 인기를 얻게 되면 정해진 일정대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며 살인적인 스케줄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멤버와 소속사간에 불화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소속사측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팀을 와해시켜 버리면 그만이고 팀원들의 미래는 더이상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발언권 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범 사건을 보면 거대한 힘을 지닌 소속사가 철저한 자본주의 원칙에 의거, 이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대형 기획사의 무서운 음모에 반격나선 네티즌
결국 지난 2월 소속사 측은 재범의 사생활 문제를 이유로 들며 팀에서 영구 탈퇴를 확정지었다. 이어 지난 27일에는 2PM 멤버들과 회사측, 팬들이 참석한 간담회가 진행됐으며 이후 2PM 멤버들의 무성의한 태도와 경솔한 언행 등 남은 멤버들의 사생활 등을 폭로하고 나서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범 시나리오’까지 등장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퍼지고 있는 이 시나리오는 오는 4월쯤 재범의 사생활 문제가 담긴 동영상, 사진, 음성녹취 등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고 이후 2PM 멤버들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
이는 소속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2집 앨범 발표 시기와 재범의 사생활 문제를 터뜨리는 시기를 맞춘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일부 팬들이 공감하면서 인터넷 상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 박재범군의 소속사는 그를 자신의 회사에서 탈퇴시킴과 동시에 한국에서 재범군이 다시 재기할 수 없도록 거짓 루머로 그의 가수 생명의 숨통을 자르고 있다.
소속사가 거짓 루머까지 만들며 한 청년의 꿈을 짓밟고 있는 지금, 끝까지 신뢰하며 그의 꿈을 보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5개월전 그에게 ‘죽일놈의 미국인’이라는 올무를 씌웠던 한국 네티즌들이다.
인터넷의 위력은 마녀사냥에 나섰던 한국 네티즌들에게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자신의 꿈의 성취를 위해 성실히 살아왔던 ‘인간 박재범’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줬다.
박재범을 한국 무대에 다시 세우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네티즌들은 한국 인권위에 거대 대형사의 횡포로 박재범 군의 사건을 제소하겠다는 의견들까지 모아지며 조직적으로 그의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가고 있는 상태다.
또한 앞으로 소속사가 입에 담기 어려운 거짓 루머를 뿌릴 것에 대비해 박재범 군의 미국생활과 그의 진면목을 인터넷 세상에 퍼나르며, 재미동포 3세 청년의 꺽인 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분주하다.
이번 재범 사건은 그저 한인 3세 청년 개인이 겪은 씁쓸한 얘기 쯤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타인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차별적인 시선,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만들어지는 네티즌 문화의 부작용, 날로 심해지는 소속사의 횡포에 이르기까지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이번 재범 사건은 여전히 편협하고 폐쇄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후원자다. 이제 이들을 미래의 동반자로 여기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량과 관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