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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이 필요할 때다
DATE 09-07-01 20:17
글쓴이 : 김홍식      
1990년 초반 국내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에는 아주 독특한 투수가 한 명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린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유망주였다. 늘씬한 체격에 서글서글한 외모, 그리고 새색시처럼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의 그는 자기 또래의 야구 선수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특히 자신의 누나가 무속인이었기 때문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어렵게 친해진 그는 한때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이 던질 공에 기를 불어넣어 공에 위력을 더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가 스며든 공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손 안에서 꿈틀거린다고 말하며 그럴 경우 손끝을 떠난 공은 살아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성격대로 너무도 진지하게 말했고 장난기의 흔적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이 어떻게 꿈틀거리냐고 묻자 “마치 작은 시동이 걸린 작은 엔진처럼 떨림이 전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틀림없이 훌륭하고 재미있는 기사거리였다. 그러나 결코 기사화 할 수는 없었다. 나를 믿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그를 웃음거리, 정신병자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 부상으로 은퇴한 그는 자신의 출중한 외모를 앞세워 잠시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곧 사람들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 연예계 생활은 애당초 그의 정신세계와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 지금쯤 어디선가 착실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그 이전에도 많은 구단들이 보이지 않는 기와 정신력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기강이 풀어지고 선수들 정신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구단 고위층의 질책도 한몫 했고 가진 밑천으로 어떻게 해서든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하는 감독, 코치의 바람도 그를 거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변도사’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자칭 기를 닦은 도사였던 그는 시즌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기수련을 시켜 이듬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몇몇 구단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한 겨울 맨발로 눈이 쌓인 오대산을 오르고 두터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어도 추위가 느껴지는 깊은 산 속에서 꽁꽁 언 연못을 깨고 그 안에 들어가 견디는 훈련도 했다.
일부 구단이 그렇게 정신력을 강화하자 또 다른 일부 구단은 정신력을 다시 무장한다며 선수들을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로 소문난 군부대 유격훈련소에 선수들을 1주일 동안 집어넣기도 했다.
아무튼 구단들이 내부적으로 그런 기와 정신력 단련 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기 수련 도중 얼음물에 들어간 선수가 심장마비 직전까지 이르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고 더 이상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효과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되돌아보건대 ‘변도사 열풍’은 초창기 어설픈 한국 프로야구의 단면이었다.
또 한 가지 사례가 있다.
1990년 LG 트윈스는 전반기를 꼴찌로 마감했지만 후반기 놀라운 상승세를 타며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LG 트윈스는 그룹 연수원에서 큰 일을 앞둔 선수들을 대상으로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 그 중 한가지 프로그램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선수들을 2열 횡대로 세운 뒤 눈을 감고 선 상태에서 뒤에 있는 선수가 앞에 있는 선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훈련이었다. 뒤에 선 선수가 눈을 감고 앞에 선 선수에게 어느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질 것을 순전히 정신의 힘으로만 보내는 것이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선수들은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앞 줄에 선 많은 선수들이 뒤에 선 선수들의 지시대로 몸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었다. 당시 강사는 이를 한국시리즈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투수에게 자신이 원하는 코스의 공을 던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다소 허황된 교육 같았지만 어찌됐든 L,G 트윈스는 삼성 라이언즈에게 4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일부 주축 선수들은 연수원에서의 정신교육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간혹 자신의 의도대로 상태 투수가 던졌을 때 선수들은 마치 자신의 텔레파시가 상대 투수를 지배했다는 착각, 또는 자신감에 충만하게 됐으며 그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풀이였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뒷받침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신력이나 보이지 않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 많은 징크스와 미신이 존재하고 성적에 빠진 팀 전체가 유니폼을 모아 태우는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순전히 어떤 신비주의 적인 힘에만 의지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맹신이고 허황된 욕심이다. 그러나 극한 상황 속에 자신을 단련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육체적 한계를 조금이라도 확장시킬 수 있다면, 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게 바로 기와 정신력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초능력이다. 
시즌 초반 잘 나가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휘청 거리고 있다. 굳건히 지키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자리도 LA 에인절스에게 내주었다. 레인저스가 바로 올시즌 강조한 게 그런 정신력이었다. 이제 최악의 불볕 더위가 이어지는 7, 8월, 위기에 빠진 지금이 바로 레인저스에게 정신력이 힘을 발휘할 때다. 과연 정신력으로 무장한 레인저스가 어떻게 7, 8월 고비를 넘을지 지켜볼 일이다. 
또 우리도 다시 한 번 정신을 추스릴 때다. 자칫 느슨해지기 쉽고 게을러지기 쉬운 무더운 여름. 올해 전반기 우리의 삶의 성적표가 어찌 됐든 심호흡 한 번 하고, 허리 띠 한 번 다시 졸라매고, 정신 바짝 차리자. 이제 우리에게도 2009년 시즌 후반기가 시작됐다.
[이 게시물은 어드민님에 의해 2012-01-22 23:11:28 에세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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